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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장하성은 누구? 엘리트 명문가, 독립운동가 집안 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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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성 교수, 그는 누구인가?

4월 30일 JTBC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사회적 평등에 대해 4번째 강연자로 출연하는 장하성 교수는 누구일까요? 그는 재벌들을 떨게하는 재벌 저격수로도 유명합니다 

장하성은 어마어마한 집안으로도 유명한데요, 호남의 대표적인 명문가 출신입니다

- 장하준, 장하석 형제와 사춘간

- 친누나 : 여성가족부 장관을 지낸 장하진

- 친동생 : 사모펀드 운용사 디스커버리인베스트먼트 대표를 지낸 옥스포드 박사출신 장하원 

- 사촌동생 : 세계화의 진실을 다뤘던 베스트셀러인 나쁜사마리아 등의 저자인 장하준 교수, 케임브리지 대학교 과학철학 석좌교수인 장하석

장하성 교수는 “2등이 1등이 될 수 있고 꼴찌가 꼴찌 탈출 할 수 있어야 평등한 사회”라며, 현 시대의 불평등에 대해 꼬집었다. 이어 “우리에게 익숙한 ‘비정규직’, ‘정규직’이라는 단어는 사실 90년대 후반에 등장한 신조어다”라며 한국의 불평등을 만드는 가장 큰 구조, 정규직과 비정규직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사회적 불평등을 꼬집는 재벌 저격수 장하성 교수의 명문가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겠습니다. 장하성 교수의 집안이 유명한 이유는 대단학 학벌 집안 으로도 유명하지만 무엇보다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던 집안이기 때문입니다

1세대 : 3형제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 (장병상은 전남의 대지주로 상해 임시정부의 군자금을 대는 독립 명문가였다고 합니다. 

- 장씨 집안은 구한 말 호남 최고의 대지주 가문이었으나 독립군 활동으로 쇠락 

- 광주학생 항일운동에 참여했다가 젊은 나이에 타계한 셋째 제외 모두 독립운동에 투신 

- 장병상은 보성전문 법학과를 다니고 다시 메이지대 법학과 졸업

- 광복 후엔 삼남 장홍렴 의원이 토지개혁법 발의해 집안 땅 농민에게 무상으로 공급 

- 장병상은 일제시대 독립운동중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당함

- 장병준은 백범 김구의 측근, 신흥무관학교 출신 독립군, 광복 이후 반민특위 검사, 제헌 국회의원 등으로 활약 

- 해방이 되어 국내에 들어온 백범 김구가 광주 계림동에 있는 장씨 지안에 들러 사진을 찍음

- 장홍렴 휘문고 재학중 광주학생운동 주도, 베이징대, 신흥무관학교 다님, 한국광복군 전남지구대 참모장, 체포되어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

2세대 : 4형제 모두 6.25 전쟁 참전 및 반독재 투쟁 

- 장씨집안의 가풍은 개인보다는 사회에 기여해야 함을 강조

- 아버지의 명에 의해 4 형제(장정식, 장충식, 장영식, 장재식) 모두 참전 

- 장재식은 광주서중 4학년 16세 나이에 참전해 낙동강 전투 참여, 이후 한국주택은행장, 산자부 장관 및 3선 국회의원

- 장재식은 서울대 법대에 조기 입학. 학생운동으로 구속 후 몇 개월 만에 치른 행정고시에 수석 합격 

-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던 장충식은 압록강 전투에서 중공군의 기관총에 맞아 상이군인 

- 역시 서울대 공대 재학 중이던 장영식(전 한전 사장, 현 뉴욕대 교수) 역시 총 맞아 상이용사 

3세대 : 학계의 거목으로 포진 

- 장하준(아버지: 은 영국 캠브리지대학 졸업 후 27세의 나이로 교수 임용. 레온티에프 상 최연소 수상, 뮈르달상 수상 

- 장하석(아버지: 장충식)은 칼텍 졸업 후 현재 케임브리지대 석좌교수. 라카토스 상 최연소 수상, 이반 슬레이드 상 수상 

- 장하성은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운동, 삼성그룹을 압박했던 소액주주운동 (장하성펀드)으로 유명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 장하진은 충남대 교수 및 전직 여성부 장관 

- 장하종은 조선대 의대 교수를 역임했으며 형제들 역시 대부분 의사 

장하성 교수는 삼성과 악연이 있는데요


장하성 교수 별명 : 재벌 저격수

 '재벌 저격수'로 통한다. 지난 1997년 참여연대에서 경제민주화위원장을 맡으면서, 삼성 그룹의 부당내부거래와 지배구조 문제를 집중적으로 제기해 왔습니다

지난 1998년 삼성전자 주주총회 때 소액주주로 참석해, 13시간 동안 부당내부거래를 집중적으로 문제 삼으면서 '삼성 저격수'라는 호칭까지 얻었습니다

장하성 교수의 주장

- 한국소득불평등은 재산격차가 아니라 임금격차 때문

- 실질 소득은 임금소득에서 나오며, 이자나 임대료, 바등으로 버는 돈은 가계소득의 1%도 안됨

- 하청직원은 같은 일을 해도 1/4 임금

- 임금이 많은 100대기업은 전체고용의 4% 나 이익총량의 60%를 가져감 

- 비정규직 문제 작용 (2015년 기준 비정규직의 임금은 정규직의 절반정도에 불과함)

- 개인 저축률은 4%인데 기업저축률은 18%

- 사내 유보율(이익대비 기업내부에 남긴금액비율)은 지속적 증가하여 기업만 더 부자가 되는 나라 

- 삼성전자, 현대차는 1999, 2000년 이후 주식발행을 한 적이 없음

(증자 등으로 자본조달을 하면 총수 일가의 지분 비율이 줄어들기 때문 -> 재벌그룹이 기형적인 지배구조를 통해 5%가 안되는 총수일가 지분으로 전체를 좌지우지 하는 상황을 유지하기 위함)

- 국가가 개입해서 국민들에게 더 분배해야 함

- 비정규직 고용요건을 사람 기준이 아니라 직무 기준으로 바꿔야 

- 평균 근속 연수가 OECD 회원국 중 가장 짧은 5년 반이며 근속 연수가 3년 미만인 노동자 비율이 전체의 반이 넘고 1년 미만 근무하는 노동자 비율도 33%에 달하는 상황을 바꿔야


장하성교수와 안철수

2012년 안철수 대선 후보 시절 장하성 교수 안철수 캠프 합류

장하성과 장하준

소액주주운동으로 삼성을 비롯한 대기업 집단과 맞서는 장하성 교수와 달리 장하준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을 대안으로 제시하며 재벌활용론을 주창하였습니다

장하성은 삼성전자 주주총회에 참석해 재무재표를 흔들며 주주배당이 적다고 호청을 쳤지만, 장하준은 주주들이 가져가는 몫이 너무 많다고 주장

장하성은 재벌개혁이 시급한 과제라고 역설했지만 장하준은 재벌체제가 신자유주의에 맞서는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주장

장하성은 재벌오너가에 맞서 소액주주의 권리를 보호하는 게 경제민주화라 주장했지만 장하준은 소액주주의 권리와 다액주주의 권리가 크게 다르지 않으며 소액주주의 권리는 결국 1인1표가 아니라 1원 1표의 시스템을 대변하는 것으로 오히려 경제 민주화에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반박했습니다

국가 VS 시장 : 장하준은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국가를 내세우는 반면 장하성은 재벌의 대안으로 시장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비판

장하성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을 말하면서 노동 배제적인 대량감원을 통한 비용축소나 하청단가 인하를 통한 기업이익 증대등의 문제를 지적하지 않습니다. 

또 외국투기자본과 손잡고 국내기업의 경영권을 위협했다는 비난까지 받았으며 진보의 탈을 쓴 신자유주의자라는 비판도 받은 바 있습니다

주요활동

장하성 교수가 주도했던 소액주주 운동이란?

소액주주운동은 소액주주들을 모아 일정 지분을 확보하여 상법과 증권거래법에 보장되어 있는 소수주주권을 행사함으로써, 기업 경영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높이고자 하는 기업 감시 활동입니다

1998년 9월 소액주주운동 5대 재벌계열사로 확대 계획 발표

소액주주 운동을 하다가 보니 간접적으로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는 일대신 직접적으로 기업의 구조를 개선 시키기 위해 펀드를 조성하여 기업의 지배구조 때문에 실제 가치보다 훨씬 저평가 받고 있는 업체를 골라 투자를 하고 경영에 참여를 해서 기업의 지배 구조를 개선 시켜서 주식을 상승 시켜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보호하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떤 회사의 주주를 개별적으로 몇주씩 가지고 있다고 해서 경영에 참여할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펀드를 통해 특정 회사의 지분이 10%가 넘는다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겠죠.

이렇게 펀드를 조성하면 대규모 자금이 생기고, 이 자금을 통해 실제 기업의 가치보다 저평가된 업체의 지분을 사들이면 경영에 참여할 기회가 생기고, 이렇게 경영에 참여하여 문제점을 해결하면 기업의 가치는 훨씬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그 회사에 지분을 가지고 있는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향상되는 순환구조를 가질수 있습니다.

장하성 펀드의 기본 개념은 우리 나라의 많은 기업들이 저평가를 받는 이유로는 투명하지 못한 지배구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하면 가치는 올라간다는 취지조 만들어졌으나 6년만에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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