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오경 선수 이혼사유, 전남편, 싱글맘, 연금, 싸움꾼, 연봉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라는 영화의 실제 주인공으로
김정은이 맡았던 혜경 역할은 임오경 선수가 모델이라고 합니다
임오경 감독은 서울시청 여자 핸드볼팀 사령탑으로 활동했으며
코트에서는 싸움꾼이라 불리 정도로 전투적이었지만
살림꾼이자 자상한 넘마라고 합니다.
2009년 당시 일본에서 돌아와
롯데월드와 석촌호수가 보이는 22층 주상 복합 아파트에 서울 야경이 보이는 집에 살았습니다
딸은 한국켄트외국인학교에 입학했으며
친언니도 근처에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녀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부터
1996년 애틀란타
2004년 아테네 올림픽까지
여자 핸드폴 대표팀에게 금메달과 은메달을 걸어준 핵심 멤버입니다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팀에서 플레잉 감독
대학 졸업 후 곧장 일본으로 건너가 새로 창단한 히로시마 메이플 레즈팀에서 플레잉 감독으로 2008년까지 14년간 활동하다가
서울시청의 러브콜을 받습니다
약력/
현재도 서울시청 여자핸드폴팀 감독입니다
학력 : 한국체육대학교 학사, 석사, 박사
전남편은?
전남편은 배드민턴 국가대표 감독인 박성우씨입니다
이혼사유
두 사람은 선수촌에서 훈련을 하던 인연으로 2년의 열애 끝에 1999년 결혼하며 신혼생활을 했지만
남편은 나가노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활동하며 주말 부부로 사느라 부부사이가 소원해졌답니다
혼자서 육아와 교육을 하느라 지쳐갔다고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또한 시댁과의 마찰도 컸답니다. 시부모들은 며느리가 전업주부로 살길 바랬기 때문인데요
남편인 박성우 감독은 그녀의 편에 한 번도 서주지 않았다네요
가끔 남편이 집에 와도 가족은 박성우 감독에게 우선순위가 아니었다네요
자살시도
그래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할까 싶어
수면제 한 통을 다 먹기까지 했답니다
가까스로 3일만에 깨어났다고 합니다
딸인 박세민 양이 엄마가 아프다고 아빠에게 전화를 했지만
남편은 제자 선수를 봐야 한다며 찾아오지 않았답니다
2008년 한국으로 오면서 이미 두 사람의 별거는 확정되었고
당시만 해도 재결합, 이혼 문제가 결정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임오경 프로필
나이 1971년 생으로 올해 47세입니다.
고향은 전북 정읍시이며
현재는 스포츠 해설가이자 핸드볼 감독으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연금은?
메달로 받은 연금은 어머니에게 다 드리고
나머지 일시불로 탄 것은 임오경 선수가 가졌다네요
일본에서 선수시절 보육원비가 비싸 맡기지 못하고 체육관에 아기를 데려다가 재우고 먹이고 했답니다
일본에 있는 동안 거의 떨어져 있어
사실상의 결혼생활을 하지는 못했다고 하네요
전남편인 박성우는 현재 새로운 연인이 생겼으나
임오경 선수는 싱글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타는 청춘에 출연한 이유는?
인생을 더욱 행복하게 살고 자신을 위해 살기위해 나왔다고 합니다
금메달 보다 값진 은메달을 깨닫게 해준 우생순
2004년 패널티 스로 로 승부를 결정지어야 하는 마지막 순간
한국은 임오경 선수와 문필희 선수의 실패로 2-4로 패했습니다
그러나 무려 19차례의 동점을 거듭한 명승부를 보여주었으며 강호로 알려진 덴마크 선수들 보다
우리 선수들이 더욱 자랑스러웠던 기뻐했던 순간이었지요.
그 영광의 순간에 임오경 선수가 있었습니다
1등만 바라보았다면 임오경 선수는 욕을 많이 먹었겠지만
비인기 종목인데도 은메달이라는 값진 결과를 가져온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임오경 선수가 임신으로 참가하지 못한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대회
한국여자팀이 유일하게 메달이 없었습니다
연봉은
딸을 낳고 감독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이미 월 1000만원 정도의 수입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있습니다
한 인터뷰에서 수입의 반 정도인 500만원을 탁아기관에 내야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2008년 인터뷰 당시 연봉 1억 2천정도 받으며 사는 집과 자동차를 준다고 합니다
현재는 서울 시청팀 국내 복귀 조건인 연봉이 일본 수준에 훨씬 못 미친다고 하니 그보다 훨씬 적다고 하네요
여기에 방송해설 위원일은 자주 하는 일은 아니니까
일본에서 만큼 대우가 좋은 건 아닌데도 한국으로 돌아 온 것 보면 한국 핸드볼 사랑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